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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르밧 과부의 믿음과 엘리야의 믿음
writer : 박민희 (fineyes) date : 2009-05-08 12:51:02 hit:3413

절망하는 사르밧 과부와 기도하는 엘리야

사르밧 과부는 그의 아들이 죽었을 때 절망했다. 그 여자는 얼마 남지 않은 가루통의 가루와 기름 조금으로 떡을 만들어 믿음으로 엘리야에게 주어서 가루통에 가루가 떨어지지 않고 기름병에 기름이 떨어지지 않는 기적을 불러온 믿음의 여인이었다. 그 과부는 믿음이 있는 사람이었지만, 자기 생각의 한계를 넘어서지는 못했다. 사람들은 아들이 죽으면 보통 ‘이제 절망이다! 끝이다!’ 하고 생각한다. 죽은 아들이 다시 살 것이라는 믿음을 전혀 갖지 못하기 때문에 당연히 그렇게 생각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사르밧 과부는 원망했다. 엘리야에게 나와서 말하기를 “당신이 나로 더불어 무슨 상관이 있기로 내 죄를 생각나게 하고, 또 내 아들을 죽게 하려고 내게 오셨나이까?” 하고 원망하며 정말 슬퍼했다. 그러나 똑같이 아이가 죽은 형편 앞에서 엘리야의 마음은 전혀 달랐다. 엘리야도 사르밧 과부와 똑같은 사람이지만, 그 과부보다 하나님 편에 훨씬 더 가까이 있었기 때문에 엘리야는 지금까지 자기가 보고 경험한 생각의 세계 속에 거하지 않고 하나님께서 어떻게 일하실지 소망을 가지고 그 아이를 안고 자기가 거처하는 다락으로 올라갔다. 사르밧 과부와 함께 있으면 그 과부의 울음소리, 슬퍼하는 소리 때문에 엘리야의 마음이 점점 더 상할 것 같으니까 아이를 안고 자기가 거처하는 다락에 올라가 침상에 누이고, 아이 위에 엎드려 여호와께 부르짖었다.

“나의 하나님 여호와여! 원컨대 이 아이의 혼으로 그 몸에 돌아오게 하옵소서!”

엘리야가 그렇게 기도한 것은 하나님께서 그 아이를 다시 살게 하여 주실 것을 믿는 믿음에서 일어난 것이었다. 물론 사르밧 과부도 기도할 줄 안다. 그러나 그 여자 생각에는 ‘어떻게 죽은 아이가 다시 살아나? 이건 안 돼!’ 하는 마음이 있기 때문에 아이를 살려 달라고 하나님께 기도하지 못하고 원망과 슬픔이 터져나온 것이다. 반대로 엘리야는, 그 아이가 죽어서 슬픈 상황에 있지만 하나님께서 그 아이를 다시 살리실 수 있다는 믿음이 있기 때문에 하나님께 기도하고 구한 것이다.

우리가 믿음의 세계로 들어가기 위해서는 여러 가지가 필요하다. 사르밧 과부는 ‘가루통에 얼마 남지 않은 가루를 가지고 떡을 만들어서 하나님의 사람에게 주면 가루통에 다시 가루가 생길 것’을 믿는 믿음은 있었다. 그러나 이 여자의 믿음의 한계는 거기까지였고, 하나님께서 자기 아들을 살리실 것이라는 믿음은 갖지 못했다. 사르밧 과부는 자기 생각의 세계 안에서 어느 정도까지는 믿음을 가질 수 있었지만, 자기 생각의 세계 밖에서 일어나는 하나님의 능력은 믿지 못했던 것이다. 많은 사람들이 그렇게 신앙생활을 하고 있다.


예수님이 고치신다는 믿음을 가져봐!

나는 주님 안에서 살아오면서 하나님께서 기적적인 일을 이루시는 것을 참 많이 보았다. 한번은 한 형제가 암으로 거의 죽어가고 있었다. 내가 그 형제가 입원한 병실 문을 열고 들어가면서 생각해 보았다. ‘형제가 이제 며칠 더 못 살 것 같은데, 여기에 내가 안 오고 예수님이 오셨다면 어떤 일이 일어났을까?’ 예수님이라면 틀림없이 그 형제 병을 고치시고 살게 하시겠다는 마음이 들었다. 그 다음에 무슨 생각이 들었냐면, ‘그렇다면 내 안에도 예수님이 계시는데, 지금 내 안에 계신 예수님과 2천 년 전 이 땅에 계신 예수님은 같은 분이신데….’ 하는 생각이 들었다.

로마서 8장 11절에서 “예수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이의 영이 너희 안에 거하시면 그리스도 예수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이가 너희 안에 거하시는 그의 영으로 말미암아 너희 죽을 몸도 살리시리라.”고 했다. ‘그래, 그 예수님의 영이 계시면 능히 살리시겠다!’는 마음이 들었다. 누워 있는 형제에게 내가 소리를 질렀다.

“형제! 날 좀 쳐다봐! 내 이야기 좀 들어봐! 링거 주사액이 호스를 통해서 형제 몸에 들어가듯이, 전기는 전선을 통해 흐르고 수돗물은 파이프를 통해 흐르듯이, 하나님의 능력은 마음에서 마음으로 흘러. 예수님의 마음과 형제 마음이 하나로 연결되면 형제 마음으로 하나님의 능력이 흘러. 내 이야기를 들어봐! 만일 형제하고 나하고 한 마음이 되어 마음이 흐른다면 형제의 아픔이 내게로 전해지고, 형제 안에 있는 기쁨도 내게로 전해질 거야. 예수님하고 우리가 한 마음이 되면 예수님 안에 있는 평안이, 예수님의 의가, 거룩이 내게 전해지듯이 예수님의 능력도 내게 전해져. 그러면 그 병은 아무것도 아니야. 형제! 형편만 쳐다보지 말고 예수님께서 그 병을 고치길 원하신다는 사실을 믿고, 예수님이 나를 고치신다는 믿음을 가져봐!”

나는 그 형제에게 믿음의 말씀을 증거했다. 형제가 주님을 믿는다고 말하고, “예, 목사님 알겠어요.” 하였다. 이야기를 마치고 병실을 나왔는데, 열흘 뒤 형제에게서 전화가 왔다. 의사가 2,3일밖에 못 산다고 했는데, 암이 다 나아서 퇴원한다고 했다.


그 형제가 왜 죽었을까?

그후 그 형제는 정상적인 삶을 살았다. 친구들과 같이 공도 차고, 여행도 하고, 운전도 하고…. 아주 건강해졌다. 그런데 꽤 시간이 흐른 뒤, 갑자기 그 형제가 죽었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나는 그 이야기를 듣고 너무나 가슴이 아팠다.

‘그 형제가 왜 죽었을까? 암이 재발할 수 있겠지. 암이 재발했을 때 형제가 자기가 죽음 앞에 서 있었을 때 자기를 살리신 그 예수님을 믿었다면, ‘아, 내게 암이 재발했구나. 걱정이네. 그렇지만 문제가 안 돼. 내 안에 예수님이 계셔. 내가 전에 이보다 더 심했는데도, 곧 죽을 뻔했는데도 살았어. 예수님이 나를 낫게 하셔.’ 하는 믿음이 있었다면 형제는 분명히 암을 이길 수 있었을 것이다.’

형제는 병이 다시 찾아왔을 때 걱정하고 염려했지, 자기 안에 계신 예수님이 병과 싸우게 하지 않았던 것이다. 만일 형제 안에 계신 예수님이 그 병과 싸웠다면 틀림없이 형제는 병을 이기고 지금까지 건강하게 살았을 것이다. 형제에게 암이 재발되었을 때 왜 죽었겠는가? 형제는 암이 재발되었을 때 ‘그러면 그렇지. 이 암은 안 돼. 지난번에는 어쩌다 살아났지만, 이제는 안 될 거야.’ 하고 사단이 넣어준 생각 속에 빠져들어간 것이다. 마치 사르밧 과부가 가루통의 기적을 보면서 “그래, 하나님의 능력으로 가루가 또 생겼어. 지금 난 그걸 먹고 있어.” 하고 말하지만, 아들이 죽었을 때에는 하나님이 살리실 것이라는 믿음을 갖지 못하고 절망했던 것처럼 말이다.


우리 한계를 넘어서서 믿음을 키워갈 때

사르밧 과부는 하나님께서 가루통의 기적을 일으키실 것은 믿었지만, 생각이 거기까지는 갔지만, 자기 생각의 한계를 넘지 못했기 때문에 죽은 아들을 하나님께서 다시 살리실 것이라는 믿음은 일어나지 않았다. 그래서 죽은 아들을 보았을 때 원망하고 슬퍼할 수밖에 없었다. 엘리야는 달랐다. 자기 생각으로는 죽은 아이가 다시 살아날 것처럼 보이지 않았지만, ‘이건 내 생각이고, 하나님께서 나와 같이 계시니까 이 아이를 살리실 거야. 하나님이 이 아이를 죽게 하실 이유가 뭐야? 살리실 거야!’ 하고 믿었다. 엘리야는 자기 생각의 한계를 넘어선 것이다. 자기가 알고 있는 지식의 한계, 자기가 알고 있는 경험의 한계, 자기가 갖고 있는 생각의 한계를 넘었기 때문에 엘리야 속에 계신 하나님께서 그 아이를 살리신 것이다.

우리는 신앙생활을 하기 위해서 내가 지금까지 알고 있던 관념이나 지혜나 경험, 그 모든 것을 버려야 한다. 왜 그런가? 하나님은 크시기 때문에 내가 가지고 있는 생각 밖의 일을 하실 수 있고, 내가 도저히 미치지 못하는 일을 능히 하실 수 있기 때문에, 관념이나 지식 같은 것들을 가지고는 하나님을 믿는 믿음의 세계 도달할 수 없기 때문이다. 하나님은 전능하신 분이시다. 능치 못하심이 없는 하나님이라면, 그분은 능히 내 지식이나 한계를 넘어서 일하실 수 있고, 우리 생각이 도저히 미치지 못할 일을 능히 이루신다. 우리가 그 하나님을 믿을 때, 하나님은 우리 믿음을 따라 역사하신다.

많은 사람들이 사르밧 과부처럼 하나님을 어느 정도까지는 믿지만, 내 생각의 한계를 넘어서는 하나님을 믿지는 못한다. 그래서 어떤 일까지는 하나님을 믿는 믿음으로 일이 정말 은혜롭게 되지만, 더 큰 어려움이 닥쳐서 마귀가 ‘이건 안 될 거야. 이번엔 안 될 거야.’ 하는 생각을 주면 그 생각을 따라가버린다. 그러면 우리는 사르밧 과부처럼 하나님의 의지하지 않고 절망하고 좌절하면서 삶을 살 수밖에 없는 것이다 .

엘리야는 하나님을 경험했기 때문에 자기 생각의 한계를 넘어서서 하나님을 믿었다. 엘리야는 사르밧 과부의 아들이 능히 살 줄을, 하나님이 능히 살리실 줄을 믿었다. 우리도 내 생각의 한계를 넘어서서 믿음을 키워갈 때 하나님께서 능력으로 일하시는 것을 경험할 수 있다.

나는 참 많은 사람들이 병중에 있을 때 ‘하나님이 내 병을 고치시겠다’는 믿음을 갖지 못하는 것을 보았다. 사람들은 형편을 많이 바라본다. 그러나 우리가 내 지식이나 형편이나 생각의 한계를 넘으면, 하나님께서 훨씬 더 힘있고 복되게 우리 삶 속에 역사하실 줄을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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