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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에서 마음으로 전달되는 믿음
writer : 박민희 (wyan) date : 2008-05-27 10:47:53 hit:2243
"롯이 나가서 그 딸들과 정혼한 사위들에게 고하여 이르되 여호와께서 이 성을 멸하실 터이니 너희는 일어나 이곳에서 떠나라 하되 그 사위들이 농담으로 여겼더라." (창세기 19:14)

마음이 흐를 때 행복하다

하나님께서 인간을 만드실 때 마음을 만드셨다. 그런데 인간은 세상의 사물을 보는 눈은 밝지만 마음의 세계를 보는 눈은 없기 때문에, 하나님께서는 인간이 서로 마음을 통할 수 있도록 말을 주어서 말로 마음을 표현하게 하셨다. 그래서 우리는 “나는 기쁘다.” “나는 외로워.” “나는 너무 힘들어.” 하고 말을 통해서 마음 상태를 표현한다. 또 “그때 내 마음은 이랬어. 그래서 내가 너를 위해 주지 못했어.” 하고 좀더 깊은 마음의 사정도 이야기한다. 이처럼 말로 마음을 표현해서 내 마음을 상대방에게 전하고 또 상대방이 내 마음을 받아들여 서로 마음이 흐를 때 우리는 진정한 행복을 느끼고 기쁨을 느낀다. 그것은 마치 우리 몸에 피가 도는 것과 같다. 피가 멈춰 있으면 온 몸이 답답하고 곧 죽게 되지만 피가 돌 때 병균을 죽이고 몸에 산소와 영양분을 공급해 주듯이, 우리도 때로는 어려움을, 때로는 기쁨을, 때로는 소망을 서로 주고받을 때 삶에 힘이 솟는다. 마음을 나누는 것이 참으로 중요한 일인 것이다.

그런데 사단은 우리 마음의 흐름을 막기 위해서 마음을 닫게 만든다. 이런저런 일로 다른 사람으로 인해 손해를 보면서 남을 불신하게 되어, 사람들은 누가 이야기하면 그것을 마음으로 받아들이지 않는다. 또 이야기를 해도 사물이나 일에 대해서 표면적인 이야기만 하지 마음의 이야기는 하지 않는다. 그렇게 마음이 닫혀 있는 사람들이 참 많다.


별 이유 없이 자살하는 군인들

한번은 어떤 부대 사단장님의 전화를 받고 그 부대에 자살방지 교육을 하기 위해 간 적이 있다. 그 부대 지휘관들의 이야기를 들어 보니, 옛날에 병사들이 자살할 때에는 특별한 이유가 있었다고 한다. 예를 들면, 애인이 변심해서 괴로워하다가 자살한다든지, 상관의 폭행이 너무 고통스러워서 자살한다든지, 아니면 자기가 해결할 수 없는 어려운 문제가 있어서 자살한다든지, 그런 이유들이 있었다는 것이다. 그런데 요즘 병사들이 자살하는 것을 보면 별 이유 없이 그냥 죽고 싶다며 죽는다는 것이다.

이런 일들이 일어나는 이유는 마음을 닫고 살기 때문이다. 마음이 닫혀 있어서 자기 생각의 테두리 안에서 벗어나 본 적이 없기 때문에, 남을 이해하지도 못하고 자기 중심적으로 좁게만 살다가 마음이 괴롭고 슬퍼서 감당이 안 되면 죽고자 하는 것이다. 그래서 나는 자살방지 교육을 할 때마다 병사들에게 ‘마음을 이야기하라’고, ‘중대장님의 마음을 한번 살펴보라’고 말한다. 중대장님이나 대대장님이 어떤 이야기를 할 때 그 이야기만 듣지 말고 ‘어떤 마음으로 이런 말씀을 하실까? 왜 이렇게 말씀하실까?’ 생각해 보고, 자신도 자기 마음을 동료들이나 중대장님이나 대대장님에게 표현하라고 말한다. “내가 고달프다.” “지금 참 괴롭다.” 이런 표현을 해서 서로 마음이 흐르면 절대로 자살하는 일은 일어나지 않는 것이다.


계집종에게서 나아만의 아내에게로, 다시 나아만에게로

성경에도 마음이 잘 흐르는 이야기들이 있는 반면에 마음이 닫혀 있는 이야기들도 나온다. 그런 경우들을 보면 안타깝기 그지없다. 마음으로 흐르는 예로 문둥병에 걸린 나아만 장군의 이야기를 보자.

나아만 장군의 집에서 그 부인에게 수종 드는 계집종의 마음에 ‘장군님이 문둥병에 걸렸구나. 저 병은 사마리아에 계신 엘리사 선지자님 앞에 가면 금방 나을 수 있는데….’ 하는 믿음이 있었다. 그 믿음은 다른 사람에게는 없고 그 계집종의 마음에만 있었다. 어느 날, 계집종은 나아만의 아내에게 조용히 찾아가서 이야기를 했다.

“우리 주인님이 사마리아에 계신 선지자 앞에 있었으면 좋겠나이다. 저가 그 문둥병을 고치리이다.”

계집종의 마음 안에 있는 믿음을 말을 통해서 나아만의 아내에게 그대로 전해 준 것이다. 그때 나아만의 아내가 그 말을 받아들이지 않았다면, “쓸데없는 소리 하고 있다! 네 일이나 해!” 하고 꾸중하고 말았을 것이다. 그런데 비록 천한 계집종의 입에서 나온 말이지만, 남편의 문둥병이 나을 수 있다는 소망스러운 이야기이기에 나아만의 아내는 그 말을 그대로 받아들였다. 나아만의 아내에게는 본래 남편의 문둥병이 낫겠다는 소망이 없었는데, 계집종 안에 있던 믿음이 말을 통해 그에게 전해졌다. 나아만의 아내가 그 말을 받아들임으로 ‘내 남편이 사마리아에 계신 선지자 앞에 가면 낫겠다’는 똑같은 믿음이 생겨난 것이다.

이처럼 믿음이란 내가 열심히 기도하거나 뭘 해서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다. 믿음은 받아들이는 것이다. 로마서 10장에서 ‘믿음은 들음에서 나고 들음은 그리스도의 말씀으로 말미암는다’고 했다.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그것을 내 마음에 받아들일 때, 그 말씀이 말하는 바와 내 마음이 같아질 때 그것이 믿음이며, 그때부터 말씀이 내 안에 살아 역사하는 것이다.

만약 나아만의 아내가 계집종의 말을 듣고도 쓸데없는 이야기 하지 말라며 끝내버렸다면 그의 속에 믿음이 설 수 없다. 계집종은 그 마음에 나아만 장군이 사마리아에 계신 선지자 앞에 가면 문둥병이 나을 것이라는 확신을 가졌기에 그 마음을 나아만의 아내에게 이야기했고, 나아만의 아내는 그 말을 받아들임으로 그의 마음에도 똑같은 믿음이 들어온 것이다. 이제 나아만의 아내는 그날 저녁에 집으로 돌아온 남편에게 이야기를 시작한다.

“여보, 우리 집에 있는 계집종의 이야기를 들어보니까, 사마리아에 아주 훌륭한 선지자가 있대요. 그 선지자는 온갖 몹쓸 병도 다 고쳤다는데, 당신도 그 선지자 앞에 가면 문둥병이 나을 수 있대요.”

나아만은 자기 아내의 말을 마음에 받아들였다. 그러니까 아내 안에 있던 믿음이 나아만의 마음에서도 일어났다.

‘아, 사마리아에 가면 내 문둥병이 나을 수 있겠다!’

믿음이라는 것은 내가 무엇을 해야 하는 것이 아니다. 참 진리를 받아들이면 그것이 믿음이다. 계집종의 마음에 있던 믿음이 나아만의 아내에게 전해졌고, 나아만의 아내에게 있던 믿음이 나아만 장군에게 전해졌으며, 나아만 장군은 그 이야기를 아람 왕에게 이야기해서 왕의 친서를 가지고 사마리아에 가서 문둥병이 나아서 돌아오는 이야기를 우리는 열왕기하 5장에서 읽을 수 있다.

발전소에서 만들어진 전기가 전선을 통해서 송전소로 가고, 그 다음에 배전소, 다시 각 가정에 들어가서 냉장고에 연결되고 텔레비전에 연결되고 세탁기에 연결되어서 그것들이 일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하나님의 말씀이 계속 연결되어서 말씀이 미치는 곳마다 하나님의 능력이 나타나는 것이다. 그런데 중간에 어느 한 곳이라도 끊어지면 전기가 일할 수 없는 것처럼, 말씀도 흘러오다가 중간에 끊어지면 그때부터는 말씀이 일할 수 없다.


마음의 흐름이 끊긴 롯의 사위들

창세기 19장에서 하나님의 천사가 소돔과 고모라 성을 멸망시키기 위해서 소돔에 왔을 때, 천사가 롯에게 이야기했다.

“그들에 대하여 부르짖음이 여호와 앞에 크므로 여호와께서 우리로 이곳을 멸하러 보내셨나니 우리가 멸하리라.”(창 19:13)

천사들이 그 성을 멸하겠다고 이야기했다. 롯은 그 말을 그대로 믿었기 때문에 ‘하나님의 천사가 이 성을 멸하겠구나! 빨리 도망가야겠다!’ 하는 마음이 일어났다. 천사가 또 말하기를 “네 사위나 자녀나 성중에 네게 속한 자들을 다 성밖으로 이끌어내라.” 하였기에, 롯은 자기 딸들과 정혼한 사위들에게 “여호와께서 이 성을 멸하실 터이니 너희는 일어나 이곳에서 떠나라.” 하고 말했다. 하지만 사위들은 그것을 농담으로 여겼다. 그들은 롯의 말을 받아들이지 않았던 것이다.

나아만 장군의 마음에 처음에는 자기 병이 낫겠다는 믿음이 없었지만, 자기 아내가 계집종에게서 그 믿음을 얻고, 그 믿음이 나아만 장군의 마음에도 들어왔다. 그와 똑같이 롯의 마음에는 소돔 성이 멸망하겠다는 마음이 없었지만 천사의 말을 듣고 ‘아, 이 성이 멸망하겠다!’는 마음이 들어왔다. 이제 롯은 그 마음을 자기 사위들에게 고했는데, 그들은 그 말을 받아들이지 못하는 것을 볼 수 있다. 롯의 마음에는 말씀이 들어와서 멸망을 당한다고 하는데 사위들은 ‘멸망은 무슨 멸망이야? 장인이 지금 농담하는 거야?’ 하고 받아들인 것이다.

노아 홍수 때에도 똑같은 일이 일어났다. 하나님께서 노아에게 세상을 홍수로 멸하겠다고 말씀하셨다. 노아는 그 말씀을 받아들였기 때문에 노아의 마음에는 멸망이 찾아왔다. 그런데 다른 사람들은 그 말씀을 받아들이지 않으니까 멸망이 올 것 같지 않고, 그러니까 방주를 만들지도 않고 방주에 들어가지도 않았다.


말씀과 다른 생각을 넣는 사단

신앙이란 우리가 무얼 열심히 노력하고 애쓰는 것이 아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우리 마음에 받아들이는 것이다. 그런데 사단은 오랜 세월 동안 인간의 마음을 지배하고 있으면서 인간이 하나님의 말씀을 받아들이지 못하도록 다른 생각을 주었다. 하나님의 말씀이 임하려고 할 때마다 말씀과 다른 생각을 일으켜서 말씀을 거부하게 만든 것이다. 노아 홍수 때 노아가 “여호와께서 이 세상을 홍수로 멸하십니다.” 할 때, 사단은 사람들의 마음에 ‘아닐 거야.’ 하는 생각을 일으켰고, 롯이 소돔과 고모라 성이 유황불로 멸망당한다고 했을 때 롯의 사위들에게 장인이 농담하는 거라는 마음을 일으켜서 그 말을 받아들이지 못하게 했던 것이다.

노아 홍수 때 수많은 사람들 속에 역사해서 그들의 생명을 빼앗고, 소돔과 고모라 성 사람들에게 역사해서 많은 사람을 멸망당하게 했던 사단은 지금도 우리 마음에 역사한다.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을 들을 때마다 말씀과 다른 생각을 우리 속에 넣어서 말씀을 받아들이지 못하게 한다. 참된 하나님의 사람들은 자기 속에서 일어나는 그러한 사단의 음성을 듣지 않고 말씀을 믿음으로 그대로 받아들인다. 하나님의 말씀이 그 마음에 들어오고 하나님의 마음이 그 마음에 임해서 하나님과 같은 생각을 가져 하나님의 은혜를 입고 복을 누리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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