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죄에 대하여 죽은 우리
writer : 박민희 (mhpark) date : 2007-10-23 08:50:19 hit:2096
 한번은 내 아들과 함께 차를 타고 대전에서 서울로 올라가는 길이었는데, 경찰관이 우리 차를 세웠다. 내가 운전하던 아들에게 물었다.

“너, 뭐 잘못한 것 있냐?”

“아니요. 속도도 제 속도로 달렸는데요.”

경찰관이 다가오기에 물었다.

“우리가 무얼 잘못했습니까?”

“많이 잘못했지요.”

“뭐가 잘못되었습니까?”

“왜 버스 전용선으로 달립니까?”

“오늘이 무슨 날인데요? 오늘 화요일이잖아요.”

“오늘은 현충일입니다.”

우리는 현충일에 버스 전용차선으로 달리면 안 되는 줄 몰랐다. 그런데 그 경찰관 이야기를 듣고 보니, 잘못한 것이다. 그날은 고속도로가 한산해서 2차선으로 가도 얼마든지 되는데, 우리는 현충일에 버스 전용차선으로 달리면 안 되는 줄 몰라서 1차선으로 달리다가 적발된 것이다. 그 법이 딱 도착하니까 내 마음에 죄가 형성되어서 그때부터 내가 겸손해지기 시작했다.

“아이고, 우리가 잘못했습니다. 실수했습니다.”

죄가 내 마음속에 살아서 일하는 것이다.


양심의 법이 죄를 살아나게 하고

사람에게는 누구든지 이 세상 법만 있는 것이 아니라 자기 양심이 법도 있기 때문에, 그 법이 우리 안에 와서 우리가 행한 일이 죄라는 사실을 깨우쳐 주어 우리 마음에 죄가 살아서 일하게 만든다. 만일 우리가 도둑질하거나 살인하고도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열매를 따먹지 않아서 선과 악을 구분하지 못한다면, 그것이 죄라고 전혀 느끼지 않을 것이다. 그러면 우리 마음에 양심의 가책도 없고, 죄가 살아 일할 수 없다.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열매를 따먹음으로 말미암아 양심의 법이 ‘이건 죄다’ 하고 깨우쳐 주었기 때문에 그때부터 내 마음에 죄가 살아나기 시작하는 것이다. 죄가 살아나면 내가 죄에 눌리고, 죄에 얽매인다. 죄의 종이 되는 것이다.


복음이 우리 속에 들어오면

하나님께서는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우리를 죄에서 구원하길 원하셨다. 우리 안에 죄가 살아 있는데, 그 죄에 대하여 죽고 의에 대하여 살게 하기 위하여 예수님이 십자가에 못박히신 것이다. 베드로전서 2장 24절에 보면 이렇게 말씀하였다.

“친히 나무에 달려 그 몸으로 우리 죄를 담당하셨으니 이는 우리로 죄에 대하여 죽고 의에 대하여 살게 하려 하심이라.”

죄가 일어나서 우리 마음에서 왕노릇하며 우리를 정죄하고 고통과 두려움 속으로 끌고 가는데,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이 우리 속에 들어오면 거기에서 벗어나는 것이다.

‘우리가 죄를 지은 건 사실이야. 그러나 그 죄의 값을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받으셨어. 십자가에서 내 모든 죄의 형벌이 끝이 났어. 그리고 죄에 속한 내 육체도 예수님과 함께 십자가에 못박혔어.’

그 사실을 마음에 믿어 받아들이는 순간, 이제는 은혜의 성령의 법이 와서 죄의 법을 이겨 주기 때문에 내가 죄를 지었지만 내 마음은 죄에서 벗어난다. 이제 나는 죄에 매여 살지 않는다. 내가 죄를 짓지 않아서가 아니다. 나는 죄를 지었고, 지금도 부족하고 연약하고 실수할 때가 있고 범죄할 때가 있다. 그러나 확실한 것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서 흘린 피가 내 죄 값을 지불하고 내 죄의 몸을 멸했기 때문에 내가 더 이상 죄에 매여 있을 수 없다는 것이다.

비록 죄가 기억난다 할지라도, 내가 범죄한 것을 내가 안다 할지라도, 그 죄의 값은 이미 지불된 것이고 십자가에서 다 처리되었다. 그렇기 때문에 그 죄가 복음을 알고 있는 사람 마음 속에 들어와서 다시 우리를 정죄할 수 없다. 복음이 우리 마음 안에 있으면 죄가 복음을 이기지 못하기 때문에 죄가 우리 속에 살아 일할 수 없는 것이다.


내가 아니요 내 속에 거하는 죄니라

죄가 역사하고 욕망이 일어나는 것이 우리 육신의 성품이다. 그래서 옛날에 우리는 육신의 욕망이나 정욕이 일어날 때 범죄하지 않으려고 애를 쓰고 발버둥을 치고, 나를 자책하고 고통했다. 그런데 이제 복음이 우리 마음에 들어오면서, 주님께서 십자가에 못박혀 우리 죄를 사하셨을 뿐 아니라 죄의 몸을 멸하여 다시는 죄에 순종하지 않도록 한 것이다.

로마서 7장에 보면 “내 속 사람으로는 하나님의 법을 즐거워하되 내 지체 속에서 한 다른 법이 내 마음의 법과 싸워 내 지체 속에 있는 죄의 법 아래로 나를 사로잡아 오는 것을 보는도다.”(롬 7:22~23) 하고 사도 바울은 말했다. 또 “내가 원하는 바 선은 하지 아니하고 도리어 원치 아니하는 바 악은 행하는도다. 만일 내가 원치 아니하는 그것을 하면 이를 행하는 자가 내가 아니요 내 속에 거하는 죄니라”(롬 7:19~20) 하고 말했다. 그러니까 내가 선을 원하고 죄를 안 지으려고 하는데 자꾸 죄를 짓게 되는 것은, 내가 아니라 내 속에 들어와 거하는 죄 때문이라는 것이다.

우리가 죄의 종이 되어 죄를 섬기며 사는 동안에 사단은 우리 속에 참 많은 일들을 하고 많은 생각을 집어넣었다. 사단은 어느 날 가룟 유다의 마음에 예수님을 팔려는 생각을 넣었다. 유다 속에 그 마음이 들어가자, 유다는 그것이 사단이 넣어준 마음인 줄 모르고 자기 생각인 줄 알아 그 생각에 매였다. 그러나 실제로 유다가 예수님을 팔려고 한 생각은 자기 생각이 아니라 사단이 넣어준 생각이었다. 유다는 그 생각이 자기 생각인 줄 알고 그 생각을 따라서 예수님을 팔아버린 것이다. 그러고 난 뒤, 사단은 다시 가룟 유다를 자책하게 했다.

‘넌 예수님을 팔았어. 너는 이제 저주를 받을 거야. 차라리 자살해! 넌 살아 남아 있을 필요가 없어. 자살해! 그게 좋아. 자살해!’

사단은 다시 가룟 유다를 속였다. 유다 속에서 일어난 그 음성은 사단의 음성이지 자기 음성이 아닌데, 유다는 그 음성을 또 자기 생각으로 속아 자살하고 말았다.

우리를 죄로 이끌어가는 생각은 우리 생각이 아니라 우리 속에 들어온 죄의 생각이다. 우리는 막연하게 그 생각이 우리 생각인 줄로 알고 그 생각을 따라갔던 것이다. 그러나 이제 예수님 안에 들어와서 그 사실을 깨닫게 된 것이다.

‘내가 죄를 짓고 죄에 끌린 것은 나 때문이 아니야. 나를 그렇게 끌어가는 것은 사단이야. 내가 몰라서 그래. 이 음성에 순종할 필요가 없어.’

그런 사실을 깨닫고 내가 죄에서 벗어나면 죄에 대해서 죽어버리는 것이다. 더 이상 죄가 우리를 주관할 수 없는 것이다. 내 속에서 죄가 나를 음란한 생각 속으로, 악하고 거짓된 생각 속으로 몰아넣어 갈 때, 전에 나는 아무 생각 없이 거기에 끌려갔다. 하지만 어느 날 복음이 내 마음에 들어와서 내 속에 거한 후로는 달라졌다. 그 모든 것은 죄가 내 속에서 그런 생각을 넣어 주는 것을 알게 된 것이다.

‘아, 이건 내 생각이 아니구나! 내가 이 생각을 따라갈 필요가 없구나!’

이렇게 깨닫고 그 생각을 따르지 않을 때, 그 생각이 내 안에서 아무 일도 할 수 없기 때문에 실제로 죄는 내 안에서 죽은 것이나 다름없고, 나를 주관할 수 없는 것이다.


죄의 몸이 멸하여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못박혀 죽으실 때, 그 십자가에서 우리 죄만 해결하신 것이 아니라 우리 자신도 함께 못박았다. 우리 옛 사람을 못박았기 때문에 이제 그 옛 사람이 다시 우리 마음에 와서 왕노릇 할 수 없는 것이다. 옛날에 우리는 우리 육신에서 일어나는, 사단이 넣어 주는 죄의 욕망을 왕으로 섬겨 그것을 따랐다. 그러나 복음이 우리 마음에 임하고,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을 가지면, 이제 내 마음을 주관하는 것은 주님이지 죄가 아니다.

사도 바울은 말했다.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박혔다’고. 그리고 ‘내가 사는 것이 아니라 내 속에 그리스도께서 사신 것이라’고. 로마서 6장에서는 이렇게 말했다.

“그런즉 우리가 무슨 말 하리요. 은혜를 더하게 하려고 죄에 거하겠느뇨? 그럴 수 없느니라. 죄에 대하여 죽은 우리가 어찌 그 가운데 더 살리요. 무릇 그리스도 예수와 합하여 세례를 받은 우리는 그의 죽으심과 합하여 세례 받은 줄을 알지 못하느뇨?”(롬 6:1~3)

우리 마음에서 죄가 죽어버린 것이다. 죄의 욕망이 죽은 것이다. 옛날에는 우리가 그것을 섬겼는데, 우리가 그 죄를 섬기지 않고 예수님을 섬기면서 죄의 모든 욕망이 죽어버린 것이다.

지금도 사단은 내 속에 죄의 욕망을 일으킨다. 미워하는 마음, 분한 마음, 음란한 마음…. 그런 마음을 일으킬 때 ‘이건 내 마음이 아니야. 사단이 넣어 주는 마음이야. 내가 이 마음을 따라가서 실패하고 망해서 죽어 지옥에 갈 뻔했어. 난 이제 이 죄를 섬기는 게 아니라 예수님을 섬겨.’ 하고, 더 이상 사단에게 속지 않고 사단이 넣어준 생각을 따르지 않고 예수님을 내 마음의 주인으로 섬김으로 말미암아, 이제는 내가 죄를 이기고 죄에서 벗어날 수 있는 것이다.

“친히 나무에 달려 그 몸으로 우리 죄를 담당하셨으니, 이는 우리로 죄에 대하여 죽고 의에 대하여 살게 하려 하심이라.”(벧전 2:24)

이제 내 안에 역사해서 나를 끌어가는 죄와 내게 가책을 주는 죄는 끝이 났다. ‘넌 이제 지옥 가. 어차피 지옥 갈 거니까 술이나 마시고 마음대로 살다가 지옥이나 가.’ 그렇게 이야기하는 죄에게 ‘너는 끝났어. 십자가에서 죄가 죽었어. 죄의 형벌이 끝났어. 이제 그 죄는 나를 정죄하지 못해. 그 죄가 나를 지옥으로 못 끌고 가. 난 의로워. 깨끗해.’ 하고 말하는 것이다. 이 사실을 믿는 믿음과 죄의 생각이 사단이 넣어준 것을 믿음으로 우리가 죄에서 벗어나고 육신의 욕망에서 벗어날 수 있는 것이다. 사도 바울은 로마서 6장 6절에서 그러한 이야기를 했다.

“우리가 알거니와 우리 옛 사람이 예수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힌 것은 죄의 몸이 멸하여 다시는 우리가 죄에게 종노릇하지 아니하려 함이니”

예수님이 십자가에 못박히실 때 죄를 지은 나도 함께 죽었기 때문에 다시는 죄에 종노릇하지 않고 살아 계신 예수님을 섬기는 예수 그리스도의 종이 된 사람이 참된 그리스도인이다. 그리스도인들은 회개할 때 “하나님, 내가 도둑질했습니다. 간음했습니다. 거짓말했습니다.” 해야 하는 것이 아니라, 내 속에서 그런 죄를 행하도록 하는 사단이 넣어준 악한 생각, 거기에서 벗어나야 한다. 우리가 그것이 내 생각이 아니라 사단이 넣어준 생각이라는 사실을 깨닫게 될 때 그 사단의 욕망은 내게서 죽어버리기 때문에 내가 죄에 종노릇하지 않고 주님을 섬길 수 있는 귀한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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