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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
writer : 김민영 (gedichte) date : 2008-10-21 12:35:26 hit:357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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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은 행복한가요?”

“글쎄요…, 행복이란 뭐죠?”

어린 시절, 난 행복이나 사랑이란 단어의 의미를 몰랐다. 사랑? 그런 게 존재하는 거야? 사랑이란 도대체 뭐지? 안아 주고 품어 준다고? 나는 도대체 그런 말들을 이해할 수 없었다.

어린 시절, 난 한마디로 말하면 TV에 나오는 불우한 환경의 드라마 같은 인생을 살았다. 사이비 종교의 교주인 아버지, 아버지를 추종하는 제자들, 도망가버린 어머니…. 어머니가 너무 그리워서 10살 때 아버지의 제자와 함께 찾아가 만난 적이 있었다. 어머니는 내 눈을 똑바로 쳐다보며 나를 모르는 아이라고 외면하셨다. 사랑, 신뢰…, 내 마음에서 그런 것들은 더 이상 존재하지 않았다.

아버지는 명철하고 잘생겼으며, 사람들에게 인기가 많고 부드럽고 여린 분이셨다. ‘그런데 왜 저렇게 미쳐 가는 거지? 미쳐 가는 아버지를 보면서도 사람들은 왜 아버지를 따르지?’ 이해할 수 없었다. 아버지가 아픈 사람의 병을 고치고 기적 같은 일들이 일어나고 귀신 들린 사람들이 정상으로 돌아오는 모습을 보면 더더욱 이해할 수 없었다. 아버지는 내게 한 번도 사랑을 준 적이 없었다. 7살 때 고사리 같은 손으로 밥을 짓게 하셨고, 강해져야 한다며 잠을 재우지 않고 무참히 때렸다. 나는 아버지를 저주하며 살았다.

중 3 때 아버지가 돌아가셨다. 혼자서 삶을 개척해야 했다. 일을 시작했는데, 처음 만난 세상은 너무나 냉혹했다. 부모가 없다고 무시하는 사람, 약한 모습을 보이면 짓밟으려는 사람…. 그래서 난 강해질 수밖에 없었다. 학교에서는 전교 회장이었고, 학교 밖에서는 일진으로 조폭들과 연관되어 학창시절을 보냈다. 싸움도 1등, 공부도 1등이었다. 많은 상과 장학금을 받았다. 우리나라 청소년을 대표해서 보건복지부장관상을 받아 뉴스에도 나왔고, 대통령이 주는 장학금도 받았다. 나는 모든 어려움을 이겨냈고, 그대로 하면 된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그것들이 나를 행복하게 만들어 주지는 못했다. 더욱 강해지려고, 더욱 성공하려고 달려갈수록 목은 더 말랐다. 대학 생활도 마찬가지였다. 반대표에 장학생으로 지내며 대학 교수가 되기 위해 열심히 목표를 향해 달려갔지만 모든 것이 공허하기만 했다. 도대체 난 무엇을 위해 산다는 말인가?

후회하며 시간을 보내던 중 동생 미정이를 통해서 IYF를 알게 되었고, 2005년 여름수양회 때 하나님을 저주하고 절대로 하나님을 믿지 않겠다던 내가 구원을 받았다. 내가 만난 IYF 사람들은 행복이 무엇인지를 정말 아는 사람들 같았다. 나는 그런 마음을 볼 수는 있었지만 공감대를 형성할 수는 없었다. 내 가슴에는 너무 많은 상처가 있어서 마음이 꽉 닫혀 있었기 때문이다.

하나님의 은혜로 굿뉴스코 5기 단원으로 미국 알래스카에 가서 많은 사랑을 받고 돌아왔다. 하나님은 네모 같은 내 마음을 망치로 때려서 동그랗게 만드실 줄 알았는데, 사랑으로 녹여서 동그랗게 만들어 주셨다.

하지만 IYF에서 느낀 사랑, 하나님에게서 느낀 사랑을 잊은 채 욕망에 사로잡혀서 작년 5월 교환학생 겸 인턴 사원으로 스위스 면세점에서 일했다. 학점도 인정받고 많은 월급도 받고 성공이 보장되는 곳이었지만, 삶은 너무나도 힘들었다. 한없이 타락한 스위스 사람들, 나도 그들과 같이 타락의 길을 가고 있었다. 파티에 가서 와인을 마시고 춤을 추고 유럽 여러 나라를 여행 다니며 시간을 보냈다. 그 속에서 내 마음은 미쳐 가고 있었다. 하나님 없는 공허함이 나를 미치게 만들었다. 나를 위한다는 삶이 나를 얼마나 공허하고 미치게 만드는지 보았다. 결국 그 길을 포기하고 한국으로 돌아왔다.

나는 정말 컨벤션 교수가 되고 싶었다. 많은 경력과 실력을 쌓아서 사람들이 인정하는 멋있는 삶을 살고 싶었다. 하지만 내가 원했던 화려한 세계는, 소돔과 고모라 시대처럼 멸망의 길을 걸어갔던 타락한 인간상이 가는 길이었다.

지금 나는 부산 링컨하우스 스쿨의 영어 교사다. 상상도 할 수 없었던 일이 나에게 일어난 것이다. 오직 나 자신만을 위해 살아가던 인생에게 링컨 학교는 꿈만 같은 곳이었다. 그리고 나의 아버지 조성화 목사님. 목사님은 내 아버지시다. 사모님도 내 어머니시다. 상처밖에 없던 내 마음을 조심스레 노크하시며 내 마음에 사랑을 심어준 목사님과 사모님! 저주스런 단어였던 아버지 어머니가 제 자리를 찾았고, 그분들은 공허하고 황폐했던 내 마음에 꽃이 피어나게 하셨다. 그 부모님의 인도로 나는 지금 제일 행복한 곳에 머물고 있다.

링컨하우스 스쿨, 이곳에서 나는 많은 것을 배우고 있다. 처음에 목사님의 인도로 이곳 교사가 되었을 때, 나는 무엇인가를 해야만 할 것 같았다. 그래서 세상에서 했던 것처럼 열심히 학생들을 가르치고 일했다. 그런데 하루는 사모님께 엄청나게 꾸중을 들었다.

“네가 링컨 학교 아이들의 인생을 망치고 있어! 아이들이 도대체 너한테서 뭘 배운단 말이야? 약함을 드러내고 살아라. 순수하게 말이다!”

처음 그 말을 들었을 때 이해하지 못했다. 어떻게 약함을 보이란 말인가? 난 아이처럼 엉엉 울었다. 그때까지 너무 불행하게 살았는데, 다시 불행한 삶을 되풀이한다는 것이 한없이 고통스럽게 여겨졌다. 내 마음의 위치가 정말 불쌍한 자의 위치가 되었다.

“내게 이르시기를 ‘내 은혜가 네게 족하도다. 이는 내 능력이 약한 데서 온전하여짐이라.’ 하신지라. 이러므로 도리어 크게 기뻐함으로 나의 여러 약한 것들에 대하여 자랑하리니, 이는 그리스도의 능력으로 내게 머물게 하려 함이라. 그러므로 내가 그리스도를 위하여 약한 것들과 능욕과 궁핍과 핍박과 곤란을 기뻐하노니, 이는 내가 약할 그때에 곧 강함이니라.”(고후 12:9~10)

이 말씀을 들으면서 사모님의 마음과 하나님의 마음을 만날 수 있었다.

‘아하, 그리스도인의 삶은 약함을 드러내고 사는 것이구나! 하나님이 내게 능력을 주신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에게 능력이 있구나!’

나는 지금 학생들과 선생님들에게 나의 약함을 자랑하고 있다. 그리고 그들과 마음으로 만나 얼마나 행복한 시간을 보내고 있는지 모른다. 나 자신만을 위해 살았던 삶, 내 일이 우선시되고 내가 슬프면 슬프고 내가 즐거우면 즐거웠던 내 인생에, 내 마음에 링컨 학교 학생들이 들어왔다.

나는 받은 사랑을 학생들에게 주고 있다. 이젠 나의 슬픔과 즐거움을 위해 시간을 보내지 않는다. 아이들의 아픔이 나의 아픔이 되었고, 아이들의 기쁨이 나의 기쁨이 되었다. 아이들 때문에 울고 웃는다.

난 더 이상 선생님이 아니다. 학생들에게 무엇을 가르치는 것이 아니라 마음에서 그들과 만나 그들에게서 많은 것을 배우고 있다. 아이들의 문제 때문에 하나님께 울부짖으며 하나님의 마음과 만나고, 각기 맛을 가지고 있는 학생들의 마음 속에서 사랑을 만나고 있다.

정말 기적 같은 일이 나에게도 일어난 것이다. 행복, 사랑, 이런 말은 내게 어울리지 않는 것처럼 생각했는데…. 남을 위해 산다는 것이 이렇게 행복할 줄이야…. 지금 내 마음에선 소리 없는 행복의 아우성이 텨져나오고 있다. 박옥수 목사님께서 자주 “사람들이 목사 안 되고 무슨 재미로 사는지 모르겠다.”고 하시는데, 나도 “링컨 학교 교사가 안 되고 무슨 재미로 사는지 모르겠다.”고 말하고 싶다. 링컨 학교 아이들은 이제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나의 보배가 되었다.

“얘들아, 너희들은 내 인생에 최대의 행복과 기쁨을 안겨 준 소중한 존재란다. 고맙고, 사랑해.”

-부산, 변미화(부산 링컨스쿨 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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